평택(平澤)이라는 지명(地名)이 갖는 의미

평택(平澤)이라는 지명(地名)이 갖는 의미
김해규와 함께하는 평택의 지명이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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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이 많고 늪 지대였던 평택평야…아산만 방조제 건설로 옥토변해
평택보다 진위가 더 지역대표…일제 경부철도 건설이후 뒤바꿔



1.못이 많은 늪지대여서 평택(平澤)


평택은 들이 넓고 물이 풍부한 고장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택(平澤=못이 많은 평야지대)"이라는 말에 별 의문을 갖지 않는다. 평택시 좌우로 끝간데 없이 펼쳐진 평택평야와, 너른 들판사이를 굽이쳐 흐르는 안성천이 모든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소사벌을 비롯한 평택평야는 처음부터 평야지대가 아니었다. 생산력이 발전하지 못했던 삼국시대나 고려시대만 해도 도두리뜰이나 오성뜰 그리고 소사뜰은 조수(潮水)가 밀려드는 갯벌과 바다갈대가 무성한 습지대였다.

본래 평택현의 영역이었던 팽성읍 일대는 백제시기에 하팔현(河八縣=여덞갈래의 물줄기가 흐르는 곳)이라고 불렸는데, 이 지명(地名)은 안성천을 통하여 조수가 밀려들고 갯고랑이 여러 갈래로 형성되었던 삼국시대 팽성읍 지역의 지형적 조건을 말해준다. 또 평택에서 성환으로 가는 1번 국도 중간쯤에는 국보 7호 봉선 홍경사 비갈(碑碣)이 있다. 이 곳에는 고려 현종 때 왕명에 의해 창건한 홍경사라는 절이 있었다. 비갈(碑碣)에 적힌 창건목적을 보면, 이 절은 고려 현종이 선왕(先王)의 유지를 받들어 무성한 바다갈대 숲에 숨어 지나가는 행인들을 강탈하던 도적들을 교화시키고 교통로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창건했다고 되어있다. 이것은 고려 전기까지만 해도 소사뜰이 조수가 밀려드는 늪지대였음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이와 같은 사실은 평택시의 배미(뱃머리=지형이 툭 튀어나와 배를 메어두던 곳), 조개터(부전조개와 같은 조개를 잡던 곳)와 같은 자연지명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으며, 안성천 변(邊)의 나루와 포구들도 증거가 된다. 추팔리의 강용원(69세)씨에 의하면 일제 말 해방 초만 해도 객사리와 추팔리 사이에는 큰 저수지가 있었으며, 평택평야 군데군데에는 크고 작은 연못들이 많았다고 하는데, 이 같은 모습이 못이 많고 늪지대였던 평택평야의 본래 모습인 것이다.

평택이 오늘날과 같은 지형을 갖게 된 것은 조선 후기와 일제 때 이루어진 대규모 간척사업과 1970년대의 아산만 방조제 건설이었다. 특히 아산만 방조제 건설은 만성적인 물난리와 조수피해에 시달리던 농지들을 안전하게 보호하였으며, 절대적으로 물이 부족하여 가뭄피해도 적지 않았던 농지들을 수리안전답으로 바꿔놓았다. 또한 일제 때와 해방 후 간척사업이 일부 진행되었던 도두리뜰과 창내리 부근의 오성뜰 그리고 가뭄과 수해로 3년에 한 번 꼴로 수확했다는 안성천 주변의 농경지들을 옥토로 변모시켰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평택은 못이 많은 늪지대에서 기름진 평택쌀이 생산되는 고장이 되었으며 "평야(平野)의 땅" 평택(平澤)이 된 것이다.


2.평택(平澤)보다는 진위(振威)가 대표적인 지명(地名)


평택시는 경기도 진위군, 충청도 평택군, 경기도 수원과 양성 충청도 직산군의 일부지역이 합쳐져서 형성된 지역이다. 이 가운데 가장 대표성을 지닌 지명(地名)은 진위(振威)라고 생각한다. 진위군은 통합이전의 평택시, 송탄시, 진위면, 서탄면, 고덕면을 아우르던 지명(地名)으로 팽성읍 지역에 국한되었던 "평택(平澤)"이라는 지명(地名)보다는 대표성을 갖기 때문이다. 진위(振威)는 삼국시대 초기에는 송촌활달이라고 하였다. 그러다가 5세기 고구려가 점령하면서 부산(釜山)이라고 했는데, 부산(釜山)이라는 이름은 순수한 우리말로 "솟뫼(솟아오른 봉우리)"이다. 그러므로 진위는 평야(平野)보다는 산(山)을 위주로 된 지형이라고 할 수 있다.

"평택(平澤)이라는 이름이 오늘날 평택시 전체를 대변한 시기는 얼마 되지 않는다. 각종 문헌을 살펴보면 평택(平澤)이라는 지명은 1905년 경부선 철도가 놓이고 평택역이 세워지기 전만 해도 오늘날 팽성읍(계양지역은 제외) 만을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그러던 것이 일제가 경부선 역사(驛舍)를 진위군 병남면의 허허벌판에 세우고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역(驛) 이름을 "평택역(平澤驛)이라고 지으면서 평택이라는 이름이 지역의 경계선을 벗어났다. 역(驛)이 들어서고 교통이 기차역(驛)을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역(驛) 주변에는 도시가 형성되었다. 이 도시가 구 평택시(평택시 원평동)이며 오늘날 평택시의 원형이었다. 그 후 1926년 진위군 병남면 평택리가 평택면으로 바뀌더니 진위군 봉남리에 있던 군청이 이곳으로 옮겨졌고, 1938년에는 진위군을 평택군으로 바꾸었으며 1995년 5월에는 송탄시와 평택시 그리고 평택군을 통합하여 통합 평택시가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역사적으로 평택지방을 대표하는 지명은 진위(振威)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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