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자고개와 구루목 전설

문장자
고개와 구루목 전설
1.복(福)을
받으려면 나눔을 실천하라!
옛
어른들은 마음을 곱게 써야 복을 받는 다고 했습니다. 성경에도 가난한 사람들과 나그네에게 착한 일을 하면 하나님께 복 받는다는 말이 나옵니다.
불가에서는 세상의 모든 생명은 인연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이나 생명도 사실은 우연히 아니라 인연이 있어
만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작은 생명도 함부로 죽이거나 괴롭혀서는 안 되며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웃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네 조상들은 가난한 이웃을 구제하거나 손님을 접대하는 것을 하늘이 부여한 책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난한
사람과 나그네에 대한 책무는 옛 이야기의 단골 메뉴입니다. 대표적인 고전소설 흥부전에도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겨우 먹고 살 수 있었던 흥부가
졸부였던 놀부에게 설움과 고통을 받으면서도 제비에게까지 선행을 베풀었다가 큰 복을 받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실 현대인들은 대부분 놀부를 꿈꾸며
살기 때문에 놀부가 벌을 받은 이유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의아해하지요. 하지만 놀부가 어떻게 재산을 모았는지, 흥부가 왜 가난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게 되면 고개를 끄덕일 겁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놀부는 부모의 유산을 혼자 가로챈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조선후기의 사회변화에 편승하여 가난한 농민들 등 처먹으며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자가 된 전형적인 경영형 부농층으로 판단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밥만 축내는 나그네를 박대한다든지 흉년이나 보리고개를 이용하여 고리대를 하거나 가난한 농민들의 땅을 헐값으로 사들이는 행위가 그런
것들입니다. 우리나라 재벌들의 행태와 닮은꼴인 이들에게서는 양반가에서 볼 수 있는 나눔의 책무를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나눔이 없는 부자는 예나
지금이나 서민들의 저주와 원성을 사게 됩니다. 내 돈 가지고 내 맘대로 하는데 무슨 참견이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궁극적으로 따지면 개인의
부(富)는 신(神)의 것이고 사회의 것이기 때문이지요.
우리고장에도
나눔에 인색하여 망해버린 부자들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 가운데 오성면 양교리에 전해오는 ‘문장자고개 전설’이나 안중읍 금곡리의 ‘구무목
전설’은 곰곰이 되새길만한 이야기입니다.
2.손님접대를
피하기 위해 혈(穴)을 끊었다?
문장자
고개는 오성면 양교5리 여술마을에서 새터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입니다. 고려시대 쯤 여술마을은 청북을 거쳐 한양으로 향하는 큰 길이 지났고 마을도
삼백 호가 넘었다고 합니다. 당시 마을에는 문장자 또는 문정승이라고 불렸던 큰 부자가 살았습니다. 교통이 편리한 큰길가의 이름난 부잣집은
과객(科客)과 걸인들의 좋은 안식처였습니다. 손님접대는 명문가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했던 옛날에는 오가는 손님을 물리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홀대를 하기라도 한다면 인심을 잃는 것은 물론이고 동네방네 소문이 나서 가문의 체통과 위신에 큰 손상을 입었습니다. 손님접대는 안주인에게
큰 고통을 주기도 하였지만 비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3백 년 동안 부와 명예를 누렸던 경주의 최부자집에서도 추수한 곡식을 삼등분 하여 그 중
하나를 손님접대를 위해 남겨 놓았다는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름난 가문에서는 “봉제사(奉祭祀) 접빈객(接賓客)”을 하느라
가산을 탕진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생하였습니다.
손님접대는
명문가의 입장에서도 꼭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시골에 사는 선비의 입장에서 손님은 세상 소식을 전해주는 정보창구였으며, 학식 있는 선비들과 교류할
수 있는 수단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밖에도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면 인심을 얻는 이점이 있었습니다. ‘까짓 거 세상인심 잃으면 어때, 나만 잘
살면 되지’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농촌에 근거를 두고 사는 양반들에게 인심은 가문의 명예와 위신을 지켜주는 수단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구제를 위해 뒤주를 따로 마련해두었던 전남 구례의 운조루는 선행으로 인심을 얻어 환란(患亂) 때에도 약탈을 당하지 않았다는 것은 명문가에게
인심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려주는 사례입니다.
하지만
문장자는 그렇지 않았던가 봅니다. 문장자에게 손님접대는 체면 때문에 할 수 없이 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래서 밥값도 못하는 나그네들 때문에 재산이
축나고 곳간이 텅텅 비는 것이 늘 아까웠습니다. 그러다보니 오는 손님은 오만상을 쓰며 받아들였고 가는 손님은 소금을 뿌려 보냈습니다. 어느 날
늙은 스님 한 분이 마을 앞을 지나다 문장자 댁에 시주를 요청했습니다. 범상치 않음을 느낀 문장자는 스님을 극진히 모신 뒤 속내를 털어 놓고
‘손님들이 오지 않게 하는 방법’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새터로 넘어가는 산의 혈(穴)을 자르고 마을 앞 내(川)를 방울미(오성면 죽리)
앞으로 돌리면 걱정이 사라질 것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마을 앞의 내(川)는 경작지를 옥토로 만들어주고, 우 백호에 해당하는 우측 산맥은 마을을
따뜻하게 감싸준다는 사실을 망각한 문장자는 뛸 듯이 기뻐하며 그대로 하였습니다. 그러자 스님의 말씀대로 손님과 걸인들이 줄어들더니 나중에는
발걸음이 뚝 끊어졌습니다. 나중에는 농사도 안 되고 가세가 기울면서 문장자의 집도 망해버린 것은 물론입니다.
3.구루목에도
비슷한 전설이
양교리와
가까운 안중읍 금곡리에도 ‘문장자 고개 전설’과 비슷한 ‘구루목 전설’이 전해옵니다. 구루목은 금곡리와 오성면 길음리 사이의 고개입니다. 이
고개에도 옛날 큰 부자가 살았습니다. 부자의 집 앞에는 날마다 걸인들이 와서 구걸을 하였습니다. 이것을 귀찮게 여긴 부자는 길을 지나던 노승의
가르침대로 구루목의 혈을 잘랐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걸인들의 발걸음이 뚝 끊어졌습니다. 생기를 잃은 집안은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망해버린
것은 물론입니다
두
이야기에는 ‘부자의 사회적 책무’를 망각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부(富)와 명예는 신(神)께서 잠시 맡긴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도 공통점이랄 수 있습니다. 저는 ‘문장자 고개 전설’은 전래되는 구전설화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몇 달 전 마을 노인들로부터
문장자의 유적이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노인 한 분과 함께 찾아간 유적은 문장자고개 옆에 있는 아주 오래된 묘 2기였습니다. 묘 앞에는
망주석과 흙에 묻힌 묘비도 있었습니다. 노인은 옛날에는 산등성이 전체가 문장자네 묘였다고 말했습니다. 아직까지 묘비를 파내어 탁본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전설의 실체를 밝히는 좋은 단서가 될 것은 틀림없습니다.
전설이든
실제가 되었든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눈과 귀 입니다. 아니, 가슴을 빼놓았군요. 옛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삶과
미래를 돌아보는 지혜를 얻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문장자 전설은 죽은 전설일 뿐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재능과 소명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열심히
노력하여 큰 나눔으로 실천하는 것, 그것이 이 전설이 전해주는 ‘신의 목소리’일 겁니다. (2007.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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