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그린벨트 지정 산파역 김의원씨 회고담 (당시 건설부
국토이용관리관)
박정희대통령 지시로 한달만에 '뚝딱'
당시 땅투기 극심. 현장답사 제대로 못해,
수정땐 대통령 결재 필요
1971년 6월 12일.
김의원 당시 건설부 국토이용관리관은 박정희 대통령의 호출을 받았다. 도로국장과 함께였다.
집무실에 도착하니 이미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가 와 있었다.
박대통령은 먼저 도로국장을 질타했다.
"도로가 왜 서울시 경계까지만 넓고 경기도지역은 좁아."
박대통령은 수도권 11개
방사선 도로를 일일이 도면에 그려가며 병목현상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대통령은 어디서부터 도로폭이 좁아지는지 훤히 알고 있었다.
- 수도권 각 도로의 병목현상을 파악해
- 해결대책을
시기·예산·소관분담 등 구체적으로 마련하고
- 접도구역(接道區域)을 설정해 건축행위 등을 제한할 것 등의
지시가 도로국장에게
떨어졌다.
다음은 김의원국장 차례였다.
"그린벨트란 것 있지. 그것 한번 해봐."
박대통령은 도면에 그린벨트를 그리기 시작했다.
서울시 경계로부터 약 20km폭의 원형벨트.
이곳에 건축을 억제해 보존하라는 지시였다.
서울인구가 600만명을 넘어서고 한해 30만명씩 서울로 몰려들어 땅투기·난개발을 일삼던 때였다.
학자들도 "뭔가 하기는 해야
하는데"하며 주춤거릴 때
박대통령은 수도권 마스터플랜
<무분별한 외곽확산을 막고, 밖에 위성도시를 개발하라>의
기본골격을 제시한 것이다.
명령을 받은 김국장은 서울시와 합동작업팀을 구성했다.
영국 런던의 아름다운 외곽 녹지대를 상상하며
2주일 동안 밤샘 작업
끝에 시안(試案)을 만들었다.
朴대통령은 한술 더 떴다.
책상 서랍을 열고 뭔가 보고와서는 여기저기 추가할 곳을 지시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때 대통령은
모 기관을 시켜 수도권 일대의
토지소유 현황을 속속들이 조사해 놓고 있었다.
갈현동·삼송리지역은 당초 건설부 시안에는 없었다.
대통령의 추가지시가 이곳에도 떨어졌다.
김국장이 힘들게 한마디 했다.
"이곳엔 기자촌도 있고…,
앞으로 서울 서북방향 발전축은 이지역밖에 없습니다만…".
"김국장, 이것봐. 불행한 일이지만 다시 전쟁이 일어났다고 가정해 봐.
또 불행히 우리가 밀렸다고 쳐. 어디서 싸우나. 바로 이
계곡이야. 이 지역에 인민군 2개사단쯤 몰아넣고
북한산에서 총공격을 퍼부을 전략요충이란 말이야. 집어 넣어".
김국장은 아무 말
못하고 물러섰고 북쪽의 벨트 폭은 30km를 넘었다.
박대통령의 그린벨트는 다목적용이었다. 순식간에 쳤다.
현지를 확인할 겨를도 없이 5만분의 1지도에 그려진 벨트는
박대통령의
지시 한달만에 현실화됐다.
관리규정 또한 엄격하게 만들었다.
건설부령(令)인 그린벨트 관리규정을 결재하며
박대통령은 또 한번 의지를 담았다.
"이 규정은 건설부령이라 하더라도
개정할 때는 필히 대통령 결재를 득한 후 수정할 것"이라는
친필 부기를 한 것이다.
이때부터 일개 부령(部令)인 그린벨트 관리규정은
법(法)이상의 권위를 갖게 됐고
그린벨트 업무는 대통령이 직접 관장하는
업무가 됐다.